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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신일 전세계적으로 날짜가 다 같은가?> <왜 법정공휴일로 지정> <연등행사 유래> <연등행사의 우리 역사> <헌법 제20조 ② 정교분리 위반>

by 찐럭키가이 2021.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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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신일 전세계적으로 날짜가 다 같은가?> <왜 법정공휴일로 지정> <연등행사 유래> <연등행사의 우리 역사> <헌법 제20정교분리 위반>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리기 위해 지정된 석가탄신일은 올해는 519()요일이며, 불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부처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는 날이다.

직장인들은 크리스마스처럼 5월마다 찾아오는 석가탄신일 휴일을 맞아 가까운 사찰로 여행을 떠나는 등 여유로운 하루를 보낸다.

특히 석가탄신일이 다가오면 형형색색으로 제작해 절 뿐만 아니라 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연등행사는 불자이건 아니건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함께 즐겨온 민속명절로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석가탄신일 공휴일은 전세계적으로 날짜가 다 같은가? 왜 법정공휴일로 지정?연등행사 유래?연등행사의 우리 역사?헌법 제20정교분리 위반 아닌가?에 대해 포스팅 하겠다.

 

1.석가탄신일 공휴일은 전세계적으로 날짜가 다 같은가?

부처의 탄생(사월 초파일,음력 48)을 기념하는 날로 '석가탄신일'로 불리었으나, 2018'부처님오신날'로 공식명칭을 변경하였다.

 

양력은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1년으로 정해 날짜를 세는 방법,‘태양력이라고도 한다.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보통 얘기하는 날짜,쉽게 말해 달력에 커다랗게 적혀 있는 날짜가 양력이다.양력은 1년을 365일로 정해 두고,지구의 공전 주기가 정확히 365일은 아니기 때문에, 날짜를 하루 더 넣어서 시간을 맞추는 4년마다 366일인 윤년을 정해 놓고 있다.

 

음력은 달 모양이 달라지는 주기를 기준으로 날짜를 세는 방법으로 달력에서 아주 작게 쓰여 있는 날짜가 바로 음력이다.달이 태양과 일직선에 있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를 초하루, 15일 뒤 달이 태양 반대편에 있어 꽉 찬 모습일 때를 보름, 다시 달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날을 그믐이라고 부른다.

 

양력이 1년에 365일 이지만 음력은 354일이고 이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 윤달이 존재한다.

 

불교 종주국인 인도 등에서는 음력 48일을 석가탄신일로 기념하고 있고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에서는 음력 415일을 석가탄신일로, 중국은 음력 48일로 정하고 있고,일본은 음력이 아닌 양력 48일에 석가탄신일을 지낸다.

불상

2.석가탄신일은 왜 법정공휴일로 지정된 것일까?

불교신자였던 용태영 변호사는 19733월 총무처장관을 상대로 서울고법에 석가탄신일 공휴권 확인 등을 구하는 행정 소송을 냈다.

 

용 변호사는 성탄일이 공휴일인 것처럼 석가탄신일도 공휴권이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공휴일로 지정, 공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만 해도 종교와 관련된 법정공휴일은 1225일 성탄절밖에 없었고 그는 석가탄신일이 공휴일이 아니라면 성탄절도 공휴일의 지정이 무효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서울 고등법원은 197410"원고는 성탄일이 공휴일로 지정됨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권리나 법률상 이익이 침해당했다고 볼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각하판결을 내렸다.

 

소송법상으로는 당사자의 소송절차상의 신청에 대하여 법원에서 부적법(형식적 요건 흠결등)을 이유로 배척하는 처분을 말하며 신청에 대해 이유가 없다고 하여 배척(패소)하는 처분인 기각(棄却)’과 구별된다.

 

하지만 용 변호사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 계류중인 1975115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석가탄실일은 법정공휴일로 지정,공포해 1975년부터 법정공휴일이 된 것이다.

 

 

3.석가탄신일,연등행사 유래는?

설일체유부 경전에 보면 당시 마갈타국의 아사세왕이 부처님께 법문을 청해 들을때 동참한 모든 제자들이 기름 등불을 켜서 법회자리를 밝혔는데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많은 사람들이 기름등불 공양을 올리는 것을 보고 자신도 복을 짓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 없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기름 한 되를 구해 불을 밝혔다고 한다.

 

아침이 돼 모든 등불이 다 꺼졌지만 난타의 불은 꺼지지 않고 밝게 타고 있었다.

 

불자들이 이를 부처님께 여쭈니 "이 등불은 지극한 성심과 큰 원력(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목적을 성취하고자 내적으로 세우는 결신과 그에 따르는 힘)을 가진 사람이 밝힌 등불이기 때문에 꺼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 때 난타가 부처님전에 예배하자 "네가 오는 세상에 아승지겁을 지나 부처가 되리니 '동광여래'라 할 것이다"라고 수기(부처가 되리라는 예언)를 내렸다.

 

아승지겁:. . 일이나 어떤 시간의 단위로도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말한다.

 

이 때부터 부처님전에 지극 성신으로 기원, 봉양하면 공덕을 입는다는 것을 깨닫고 등불을 밝히게 됐다고 한다.

연등

4.연등행사의 우리 역사

삼국시대 신라에서는 '간등(看燈)'이란 이름으로 신라 진흥왕(서기 551)때에 戰死士卒을 위하여 外寺에서 7일동안 설행 (국가에서 행사를 주관하고, 국왕이 참여함)되었고 선덕여왕 때에는 황룡사에서 열렸다는 것 외에도 다수의 기록이 있는 등 신라 이래로 국가차원에서 열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는 불교국가인 만큼 더욱 성대히 국가적 종교놀이 문화로 발전하여 그 절정을 이루었는데春燃燈 冬八關이리하여 연등도감(燃燈都監)과 팔관보(八關寶)라는 행사주관기구를 두고 국가에서 직접 재원을 조달하고 주관하는 전국가적 행사로 발전하였고,1115일에는 팔관회를, 215일에 풍년을 기원하면서 연등회를 개최하여 온 백성이 잔치를 베풀고 가무를 즐겼고 고려말기 공민왕은 직접 초파일에 연등행사를 열었고, 이때부터 초파일연등은 일반 서민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초파일 연등은 계속됐는데 조선시대에는 통금시간이 되면 종이 울리고, 그 후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다니는 것을 금밤에 통행금지가 있었으나.초파일만은 통금이 해제됐을 정도로 사월 연등은 민간에 깊이 뿌리박고 있어서 민간에서는 연등회에 이루어졌던 각종놀이를 하는등, 세시풍속으로 정착되어 계승되었다.

 

해방후에는 민간에서는 점차 사라지고 사찰에서나 명맥을 이어왔다.

절에 걸린 연등

5.헌법 제20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데 위반 아닌가?

초파일연등이 석가의 탄신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계속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으나,고려시대까지 계속 성행해 온 민속적 의미가 강한 정월연등, 2월 연등의 행사까지 아울러 행하게 됨으로써 초파일은 단순히 불교적 의미만이 아닌 즉,불교인이 아니라도 우리 민족 고유의 세시풍속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이 탄생을 상징하고 있는 데서 석가의 탄생일이 정해졌고 만약 그렇다면 이날은 불교인만의 명절이 아니라 보편성을 지닌 만인의 명절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의 명절로 정착되어 온 것이다.

 

서양인들에 의한 성탄절이 기독교인만의 명절이 아니라 만인의 명절이 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특정종교를 국가가 국교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우리민족의 명절로 간주되므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연등(燃登)이라 함은 부처님께 공양하는 방법의 하나로 번뇌와 무지로 가득찬 어두운 세계(無明)를 밝게 비춰주는 부처님의 공덕을 칭송하고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고자 등()에 불을 밝히는 것을 말하므로 현대인들은 그냥 하루 쉬는 날로만 여기지 말고 그 의미와 우리역사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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