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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위백서 또 독도 영유권 주장..대만 문제도 최초 언급> <중국 견제 강화대만은 누구 땅이기에 일본이 간섭하는가?>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 한국과 영토분쟁>

by 찐럭키가이 2021.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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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위백서 또 독도 영유권 주장..대만 문제도 최초 언급> <중국 견제 강화대만은 누구 땅이기에 일본이 간섭하는가?>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 한국과 영토분쟁>

일본 방위성이 올해 방위백서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반복했다.

도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양국 정상회담까지 거론되는 중에 또다시 민감한 외교 현안을 꺼낸 것이다. 백서는 대만 문제 등을 처음으로 서술하며 중국에 날을 세우기도 했다.

중국 견제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으로 해석된다.

일본 방위백서 또 독도 영유권 주장..대만 문제도 최초 언급, 중국 견제 강화대만은 누구 땅이기에 일본이 간섭하는가?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 한국과 영토분쟁을 포스팅 한다.

 

1.일본 방위백서 또 독도 영유권 주장..대만 문제도 최초 언급, 중국 견제 강화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은 13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 주재 각의에서 지난해 4월부터 올해 5월까지의 안보 환경 등을 기술한 2021년판 방위백서를 보고했다.

 

방위성이 공개한 전문을 보면 올해 백서는 개관에 주변국과의 안보환경을 서술하면서 우리나라(일본) 고유영토인 북방영토(쿠릴 4개 섬의 일본식 표현)와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이름)의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존재한다고 적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 시절인 2005년 이후 17년째이며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이 민감해하는 독도 문제를 다시 거론한 것이다.

 

<독도에 대한 포스팅입니다.참고 하세요!>

#<독도 표기'에 뿔난 국민들..보이콧> <조선왕국전도는?> <스페인이 독도는 한국땅 인정..일본도 반박불가"> <보이콧 가장 마지막 카드..독도 수호 훈련,대마도의 날등 적극적 대응해야>

https://jinluckyguy.tistory.com/299

 

 

백서는 양국 방위 당국 간 문제가 방위 협력·교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히며 그 예로 201810월 제주 국제관함식에서의 해상자위대 함대기(욱일기)를 둘러싼 한국의 대응, 같은 해 12월 동해상에서 있었던 한국 해군 구축함(광개토대왕함)과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 간 대립,한국 해군의 독도 주변 군사 훈련,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통보 및 통보 효력 정지 논란 등을 들었다.

 

이어 한국 방위 당국에 의한 부정적인 대응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방위성과 자위대는 이러한 현안에 대해 한·, ··일의 협력이 손상되지 않도록 계속 한국 측의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해 나가기로 했다고 덧붙였고 이는 일본의 행태에 대한 한국의 대응을 한··3국의 협력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으로 본 것이다.

 

백서는 북한의 군사 위협과 관련해서는 북한은 이미 일본을 사정권에 두는 노동과 스커드ER이라는 탄도미사일을 수백기를 보유하고 있어 이런 탄도미사일에 핵무기를 탑재해 일본을 공격할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앞서 지난해 백서에는 북한은 핵무기 소형화·탄두화를 실현해 이것을 탄도미사일에 탑재해 우리나라를 공격할 능력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의 대일본 핵 공격 능력을 인정했으나 올해는 이에 더해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미사일로 노동과 스커드ER를 특정했다.

 

백서는 대만을 둘러싼 정세 안정은 일본의 안정보장은 물론 국제사회 안정에도 중요하다한층 긴장감을 가지고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일본의 방위백서에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만 문제와 관련된 기술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대만 정세 안정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백서는 올해 미·중 관계를 다룬 항목을 신설했으며,센카쿠 열도 주변에서 영해 침입을 반복하는 중국 해경선의 활동을 국제법 위반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에 대해 중국과 일본은 각각 역사적 · 국제법적으로 자국의 고유의 영토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우선 중국은 1403년 명나라 영락제 시기의 문헌을 근거로 중국이 댜오위다오/센카쿠를 가장 먼저 발견했으며, 댜오위다오라는 이름을 붙이고 섬을 이용해왔다고 주장하며 이때부터 계속해서 중국이 관할권을 행사했고 중국 연안방어구역 범위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며, 댜오위다오를 중국 영토로 표기하고 있는 다수의 고지도를 증거로 제시한다.

 

또한 1895년 청일전쟁의 패배로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일본에게 대만 및 그 부속도서, 팽호제도를 할양하였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회담에 따라 일본이 부당하게 강점한 영토를 중국(중화민국)에 반환하도록 된 점도 증거로 들고 있다.

 

즉 중국은 댜오위다오가 대만의 일부로서, 시모노세키 조약 및 카이로선언, 포츠담 선언에 따라 귀속이 변천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은 1879년 류큐왕국을 오키나와현으로서 일본에 종속시키고, 이어서 인근의 센카쿠 열도가 무인도임을 확인한 후에 오키나와현으로 편입시켰다고 주장한다.

 

즉 청일전쟁과 무관하게 일본이 발견·개척한 영토라는 주장으로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당시에 오키나와는 물론 센카쿠 또한 중국의 할양대상이 아니었고, 동 도서에 대해서는 카이로선언 및 포츠담 선언의 결정이 적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마찬가지 이유로 샌프란시스코 조약2)에 의해 일본이 포기해야 하는 영토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2차 세계대전이후 오키나와의 부속도서로서의 센카쿠는, 일본의 영토로서의 법적 지위는 유지하나,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오키나와와 함께 미국의 시정권 하에 놓였으며, 1971년 오키나와 반환 조약 및 1972년 조약의 실행에 따라 일본이 다시 시정권을 되돌려 받았다는 것이 주장하는 것인데 국력이 강해야 영토도 지킬 수 있음을 명심해야겠다.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에 적극적으로 보조를 맞춘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이번 백서에는 표지 그림으로 말을 탄 사무라이를 그린 묵화를 채택해 호전적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방위백서 표지

다만 방위성 측은 아시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위대의 강력함과 일본의 강고한 방위 의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하며 무사가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그릴 경우 전수방위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말의 고삐를 움켜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수방위란 상대방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방위력을 행사하고, 그 방위력 행사 형태도 자위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로 제한하며 또한 보유하는 방위력도 방위를 위한 필요 최소한으로 한정하는 등 일본 헌법정신에 맞도록 수동적인 방위전략 자세를 견지하는 것을 말한다.

2.대만은 누구 땅이기에 일본이 간섭하는가?

명대(明代)에 이르자 해상무역과 해적활동을 하는 한족의 정착이 늘어났고 동시에 동방무역에 나선 서구의 열강도 타이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명나라는 타이완을 행정 관할에 두지 않았고 원주민과 한족,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각자의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으며 타이완을 통치하는 기구나 세력은 없었다.

 

1590년 동방무역을 위해 이곳 해역으로 진출한 포르투갈인이 타이완을 방문하여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포르모사(Formosa)라고 명명하였고 1616년 일본인들이 대만을 점령하려다 풍랑으로 수천명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이후 네덜란드가 타이완 남부에 정착하였는데 그들의 목적은 동방무역을 위한 것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앞서 정착한 한족을 누르고, 이곳에 무역기지를 건설하였다.

 

1661년 명나라가 청에 패망하자 유신 정성공(鄭成功)이 부하를 이끌고 타이난[臺南]에 상륙하여 지란디아성을 점령해서 네덜란드인을 항복시키고 타이완을 항청복명(抗淸復明)의 기지로 삼았다.

 

1684년 청은 타이완을 푸젠성에 예속시키고 타이난에 타이완부()를 설치하였고 청나라는 1884년 프랑스와 청불전쟁(淸佛戰爭)이 일어나자 열강의 침략을 막기 위해 이듬해 타이완을 하나의 성()으로 격상시키고 순무(巡撫)를 파견했다.

 

그러나 청일전쟁(淸日戰爭)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하면서 타이완은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타이완 주민들은 타이완 순무이던 탕징쑹(唐景崧, 1841~1903)을 총통으로 추대하고 타이완민주국(臺灣民主國)을 선포하고 5개월 동안 각지에서 일본군에 맞서 무력항쟁을 벌였으나 패하면서 타이완민주국은 붕괴되었고 타이완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19451025일 중국으로 반환되었으나 새로 이주해온 외성인(外省人)과 원주민인 본성인(本省人) 사이의 갈등이 촉발되어 1947228일에는 ‘2·28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뒤 1949년에는 중국공산당과의 내전(內戰)에 패배한 국민당(國民黨)의 장제스(蔣介石) 정권이 난징(南京)에 있던 중화민국(中華民國) 정부를 타이완의 타이베이(臺北) 시로 옮기면서 오늘날까지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3.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 한국과 영토분쟁

일본은 중국을 "힘으로 국제질서를 변경하려는" 수정주의국가로 규정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센카쿠열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미국을 등에 업고 동아시아 해양패권(oceanic hegemony)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자체 군사력을 증강하고, 해상보안청 자산 확충 등 준()군사력을 강화하는 한편, 오키나와 주변 해역에서 도서탈환 훈련을 포함한 연합기동훈련을 실시하는 등 미일 동맹의 억제력을 과시하고 있다.

 

위기 시에는 감정과 인식 등 인지적인 요소가 합리적인 판단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양국 현장사령관의 비승인된 행동으로 말미암아 의도하지 않게 분쟁이 격화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중일간 민족주의적 국민정서를 우려하며,연루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은 분쟁의 경과 및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중일분쟁 뿐만 아니라 우리 독도문제 역시 분쟁 악화를 막기 위한 미국의 노력을 관찰할 필요가 있으며 미국은 주권분쟁 불개입 원칙을 고수하는 까닭에,분쟁 예방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 중국에 대한 억지와 동맹국 일본에 대한 제지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동북아시아 정세의 큰 흐름은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대중견제에 미국, 러시아가 가세, 또는 미중 대립과 경쟁 속에서 일본이 미국에 편승하고 있는 형국이기에 이러한 대세가 뒤바뀌지 않는 이상 중일의 대결 구도는 지속될 것이며,그 속에서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문제 역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며 우리 독도문제와 이어도 문제도 이러한 국제정세속에서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눈에 띄는 변화는 일본이 안보 보장을 위해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영국 등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역외국가와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가을 일본육상자위대가 처음으로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 군대, 즉 영국육군과 연합훈련을 실시한 데 이어 일본해상자위대는 미국 · 영국 해군과 함께 혼슈 남쪽 해상과 공중에서 처음으로 3국 연합훈련을 실시하였고 일본해상자위대는 인도태평양지역에 5개월간 핵추진항공모함을 파견한 프랑스와 처음으로 연합훈련을 실시하였다.

 

우리 역시 해양 주권을 지키기 위해 울릉공항을 전투기가 뜰 수 있는 공항으로 만들기를 요청하며 정부가 만들려고 하는 경항모라 하더라도 전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혁신적인 설계를 할 수 없을까?사고의 전환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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