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아프가니스탄 와칸회랑은 어떤 곳인가?> <와칸회랑,탐나지만 먹으면 체하는 땅...신장 독립세력 도화선,범터키주의 확산 가능성> <중 일대일로 와칸 회랑은 독..미·중 충돌할 화약고>

by 찐럭키가이 2021. 9. 5.
728x90
반응형

#<아프가니스탄 와칸회랑은 어떤 곳인가?> <와칸회랑,탐나지만 먹으면 체하는 땅...신장 독립세력 도화선,범터키주의 확산 가능성> <중 일대일로 와칸 회랑은 독,..·중 충돌할 화약고>

아프가니스탄과 주변 나라의 지도를 보면 굉장히 특이한 국경선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아프간 동쪽에서 위로는 타지키스탄, 아래로는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북 16~22, 동서 350의 길쭉한 골목이 형성돼 있고 이 회랑의 동쪽 끝이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연결돼 있다.파미르 고원으로 향하는 길목이며 해발 고도 4900m를 넘나들며 그야말로 사방으로 어디 한 군데 뚫고 나갈 데를 찾기 힘든 험지 중의 험지이며 위구르어로 '산 아래 큰 사막'이란 뜻의 타클라마칸을 통해 동서를 잇는 실크로드의 일부였고 면적은 경기도의 두 배나 되는 큰 땅이나 인구는 고작 13000명 정도이나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국을 장악하면서 동쪽 끝과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를 잇는 와칸 회랑(Wakhan corridor)’의 전략적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와칸회랑은 어떤 곳인가?와칸회랑,탐나지만 먹으면 체하는 땅...ETIM 신장 독립세력 도화선,범터키주의 확산 가능성,중 일대일로 와칸 회랑은 독,..·중 충돌할 화약고등을 포스팅 한다.

1.아프가니스탄 와칸회랑은 어떤 곳인가?

혜초가 지날 당시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의 공인 국경 92.45와 맞닿은 와칸 계곡은 불교 문화가 꽃피는 호밀(胡蜜)로 불렸고 세상의 지붕으로 불리는 파미르 고원 아래 호밀국을 지나며 산골짜기에 살아 집이 협소하고 가난한 백성이 많다승려도 있고 절도 있어 소승(불교)이 행해진다고 적었다.

 

▲혜초(慧超, 704~787)는 신라 시대의 승려이다.밀교를 연구하였고, 인도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겼다.719년 중국의 광주에서 인도 승려 금강지(金剛智)에게 배웠고, 723년경에 4년 정도 인도여행을 한 뒤,733년에 장안의 천복사에 거주하였으며, 780년에는 오대산에서 거주하였다.

 

아랍인이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중국(당나라)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중앙아시아에서 중국 영향력은 쇠퇴하고 티베트가 세력을 확장했고 톈산 북방 초원은 투르크계 민족이 장악했으며 이슬람은 중앙아시아의 지배적인 종교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 사건은 제국의 무덤아프간에 당 제국이 첫 희생양이되어 당의 붕괴를 가속화했고 안사의 난(755~63)이 이어지며 쇠락이 시작됐다.

 

▲당 태종 때(628~649년),중국과 중동, 지중해 연안을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지배하기 위해서중국은 중앙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8세기에 중국은 힌두쿠시 산맥까지 뻗친 1,610㎞ 가량의 지역을 정복했으나 새로이 이슬람화된 아랍인도 나름의 확장 계획을 품고 있었고, 710년 그들은 커다란 캐러밴 도시 부카라와 사마르칸트를 점령했다.

 

▲747년 당(唐) 현종(玄宗, 685~762)이 당과 경합하던 티베트 강국 토번이 세력을 넓혀 당의 서역 경영을 방해하자 고구려 유민 고선지(高仙芝, ?~755)에게 기병과 보병 1만을 주며 파미르 원정을 명했고 지금의 신장(新疆) 쿠차에 있던 안서도호부를 출발한 고선지는 카쉬가르와 타쉬쿠르간을 지나 아프간의 와칸(호밀), 파키스탄 접경인 길기트(소발률), 발루치스탄(대발률)을 차례로 정복했고 와칸 남쪽 길기트에서는 왕과 부인인 토번 공주까지 포로로 잡았다.

 

▲750년, 고선지(高仙芝)가 이끄는 중국군이 타슈켄트를 점령하고 투르크인 군주를 처형했고 왕의 아들은 중국군을 몰아내기 위해 아랍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파미르 승전의 공으로 안서사진 절도사(총독)에 임명된 고선지는 751년 중국 세력에 맞선 아랍 아바스 왕조 연합군과 아프간 북쪽 키르기스스탄의 탈라스강에서 맞붙었다.

 

▲751년 4만 명의 아랍-투르크 군대가 중국 영토로 진격했으며,고선지의 군대와 맞서 중국군은 주로 보병이었으며 아랍-투르크 기병에 허를 찔려 겨우 몇 천 명의 중국 군사만이 탈출했다.

 

▲이 전투 이후,중국 포로들이 사마르칸트에서 강제 노역에 처해 제지 공장을 지었고, 이 공장에서는 중국이 비밀로 지켜왔던 종이 제작법이 이슬람 세계에 전파된 것은 이 무렵이었고, 이후 13세기에 유럽으로 전달된다.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의 맹주로 휩쓸 때 1271년 베네치아에서 출발한 마르코 폴로는와칸 계곡을 지나며 보칸(Vocan, 지금의 와칸)이라 불리는 사방이 사흘 거리 밖에 되지 않아 그리 크지 않은 지방에 도착했다주민은 마호메트를 신봉하고 나름의 언어를 갖고 있으며 내로라하는 전사들이라고 동방견문록에 기록했다.

 

제국주의 시대 맞붙은 열강은 영국과 러시아로 이들은 19~20세기 아프간 지역 주도권을 놓고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을 벌였다.

 

당시 아프간은 이란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이슬람 왕조국가(두라니·바라크자이 왕조)를 성립하고 있었으나 영국은 인도 이권의 사수를 위해, 러시아는 부동항을 얻기 위한 남하 정책상 아프간에서 패권 다툼이 불가피했다.

 

영국은 제1(1838~42), 2(1878~80), 3(1919)에 걸쳐 공격에 나섰으며 특히 약 16000명의 영국군이 투입된 1차 전쟁에서 대영제국은 병력 전원이 사망하고 동인도회사 소속 외과의사 한명만 살아남아 귀환하는 치욕적인 패배를 맛봤다.

 

치열한 전쟁 끝에 영국은 와칸 회랑(Wakhan Corridor)을 완충지대로 두는 국경을 완성하고 아프간 동쪽 일부를 영국령 인도(파키스탄 지역)에 편입시켰다.

 

하지만 끈질긴 저항으로 영국의 침략을 물리친 아프간은 1919년 독립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 왕국을 세웠다.

 

아프간 군주정은 19737월 국왕의 사촌인 무함마드 다우드 칸 총리가 일으킨 쿠데타로 전복됐고 이로 인해 친소 공화정(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이 들어섰는데 이것이 또 다른 외세 침략의 계기로 작용했다.

 

소련은 아프간을 중동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길 원했고 중소국경분쟁을 이용해 미국이 중국과 화해하면서 외교적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에 197912월 소련은 친소 정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아프간을 침공했다.

 

사회주의 정부(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를 세우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슬람 무장세력 무자헤딘(전사들)의 저항에 직면했다.

 

결국 10년간 840억 달러(99조원)의 전쟁비용을 쏟아붓고 병력 5만 명을 잃은 채 19892월 아프간을 떠났고 이 전쟁이 소비에트연방 붕괴를 가져온 원인 중의 하나로 분석된다.

 

20019·11 테러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아프간에 발을 들였던 미국도 전쟁비용 2조 달러(한화 약 2356조원)를 쏟아부은 아프간 전쟁은 20년을 버틴 탈레반 세력의 재집권으로 막을 내려 '2의 베트남전쟁'이란 치욕 속에 물러났다.

 

이렇케,20세기 초 영국의 보호국이었던 아프간은 바라크자이 왕조(1823~1973)가 독립국가로 출범한 이래 아프가니스탄 공화국(1973~1978)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1978~1992) 이슬람 무자헤딘 연합 라바니 정부(1992~1996) 탈레반 1친서방 이슬람 정부(2001~2021)를 거쳤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카불 민주정부를 20년 만에 축출하면서 '탈레반 2'는 독립 이후 여섯번째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2.와칸회랑,탐나지만 먹으면 체하는 땅...ETIM 신장 독립세력 도화선,범터키주의 확산 가능성

17세기 초 만주족이 중국의 주도세력으로 부상할 때쯤 몽골은 남··서 세 덩어리로 나뉘어 있었고 오늘날의 내몽골, 몽골공화국, 신장에 해당하며 청나라 최전성기를 이끈 6대 황제 건륭제가 서몽골의 영웅 아무르사나를 정벌한 후 이 지역에 대한 직접 통치에 들어갔으며 1759년 이를 새로운 강역, 신장(新疆)이라 선포했고 이 지역에 거주하던 위구르인들은 이를 부당한 병합으로 여기고 있다.

 

중국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신장자치구) 분리 독립을 추구하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 세력이 와칸회랑을 통해 침투하거나 이곳을 거점으로 신장자치구 독립운동을 전개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 중국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아프간)에서 재집권함에 따라 아프간과 자국을 잇는 '와칸회랑'(Wakhan corridor)을 주시하고 있다.

 

ETIM은 신장자치구에 '동투르키스탄'이라는 독립국을 세우려고 1990년 설립한 단체로 이 단체는 2014년 신장자치구에서 폭탄테러를 한 것을 비롯해 여러 차례 테러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중국은 ETIM이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을 계기로 와칸회랑을 통해 신장자치구에 침투하거나 이곳을 근거지로 신장자치구 분리독립 운동을 전개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20년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에는 ETIM 무장세력 500여 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바다흐샨주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대부분 장악한 7월 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이끄는 탈레반 대표단을 톈진(天津)에서 만나 협력관계를 구축하면서 ETIM과의 '명확한 관계 단절'을 요구했고 탈레반에 ETIM을 지원하지 말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중국은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지부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 카불 국제공항 주변에서 저지른 테러를 규탄하면서도 유엔 안보리가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ETIM을 미국이 테러조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이중 잣대"라고 비난하면서 ETIM에 관심을 표명했다.

 

탈레반의 귀환으로 아프가니스탄 주변국들의 속내가 복잡해진 가운데 탈레반 정권이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에 따라 중국-러시아와 손을 잡든지 아니면 터키(탈레반과 ETIM은 모두 수니파 무슬림이며 터키 인구의 90% 이상이 역시 수니파 무슬림)와 손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범터키주의(Pan-Turkism)가 불러온 도전에 대해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중국은 주로 ETIM의 성장을 범터키 민족주의 연장성산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터키가 중국과 러시아의 경쟁국으로 여겨진다.

 

범터키주의는 크림반도와 볼가 강변에 정착해 있는 민족들을 포함해 터키어를 사용하는 모든 투르크족들을 정치적으로 통합하려는 이념으로 만약 탈레반이 범터키주의에 힘을 싣게 된다면 중동과 아시아를 어우른 민족주의 발호로 국제 정치 혼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서쪽으로 아프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란의 입장은 동부에도 친()터키 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된다.

 

이에 중국 정부는 18일부터 탈레반에게 ETIM을 비롯한 테러 세력의 유입을 막겠다는 확약을 얻었음에도 타지키스탄과 대테러 훈련에 돌입하며 경계 태세에 나섰다.

 

중국과 타지키스탄은 외칸 회랑을 사이에 두고 아프간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특히 이 지역은 중국 신장을 맞대고 있어 중국은 신장을 통한 아프간 무장 세력의 확장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3.중 일대일로 와칸 회랑은 독,..·중 충돌할 화약고

중국이 내륙으로 국경을 맞댄 나라는 모두 14으로 아프간도 그중 하나로 중국은 와칸회랑의 아프간을 장악한 미국이 탈레반과 치열한 교전을 벌인 2008년 전후에 전략적 가치를 찾았다.

 

당시 미국은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인 아프간의 특성상 전쟁물자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가장 중요한 보급로는 파키스탄인데 파키스탄 북부가 탈레반의 주무대인 데다 파키스탄 인구의 15%3000만명 정도가 탈레반 계열인 파슈툰족이라 위험천만이라서 기존 보급로를 대체하는 보다 안전한 곳으로 와칸회랑을 지목했다.

 

미국은 중국에 와칸회랑으로 가는 통로를 열어달라고 사정할 수밖에 없었고 중국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최종적으로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와칸회랑의 군사전략적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중국은 처음에는 해발 4900m 전후의 고지대라 손대길 꺼려했다가 2008년 아프간에 주둔하던 미국과 영국이 전쟁물자 보급을 위해 이 지역을 개방해 달라고 요구하자 보는 눈이 달라졌고 중국 정부는 이 요구를 거부하고 이듬해부터 국경 10근처까지 도로를 새로 건설하고 이동통신 중계시설도 설치했다.

와칸회랑

이로부터 약 5년의 세월이 지나 20139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대에서 역사적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연설을 한다.

 

아프간은 일대일로 전략을 추진하는 데 있어 입구가 되는 곳으로 중국은 기존의 카라코람 고속도로와 아프간의 도로망이 연결돼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으로 가는 루트가 마련되므로 와칸회랑에 아프간 중심부로 가는 도로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이는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미국이 중국의 목줄을 겨누는 믈라카해협의 군사·경제적 가치를 무력화할 수 있는 카드다.

 

또한,아프간은 약 3조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추정되는 리튬, , 구리, 코발트,회토류 같은 천연자원의 보고이며 중국이 일대일로 이후 아프간 자원에 대한 투자를 늘려온 속내이기도 하며 아프간 입장에서 보면 유일한 외국 소유 광산(구리)이 중국 거다.

 

하지만,중국이 와칸은 군대로 막을 수 있겠지만, 타지키스탄과 파키스탄을 우회하는 유입까지 막으려면 일대일로역시 주춤할 수밖에 없다.

 

아프간의 길쭉한 와칸 계곡에 지난 10년간 미국은 50의 도로를 닦았으며 와칸은 일대일로로 부활할 것인가?아니면 중국의 화약고 신장을 찌르는 단검이 될까?

 

일단 압둘 살람 하나피 탈레반 정치국 부장(副長)2일 우장하오(吳江浩)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와 통화에서 일대일로 참여를 희망했으나 탈레반이 국제사회와 공조하는 낙관적 시나리오와 공포 통치와 내전 격화로 난민·테러·마약이 인접국으로 번지는 비관적 시나리오는 여전히 모두 가능하며 신장 독립을 노리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이라는 중국의 역린을 아는 탈레반과 이슬람국가-호라산(IS-K)은 모두 중국에 부담이다.

 

그런데 현재 회랑 지역은 탈레반 근본주의와 거리를 두고 있는 이스마일파의 영향권에 있다기 때문에 탈레반은 지난달 초 사절단을 파견해 주민들과 소통에 나서는 등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탈레반 세력의 유입에 위기감을 느낀 주민들이 타지키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 등으로 대거 망명을 신청하면서 조용하던 지역에 혼란이 생겨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사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는 물론, 조 바이든 정부도 중국의 인도 남하를 저지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당장은 탈레반과 중국의 우호적인 태도를 볼 때 긴박한 위기가 조성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역내 워낙 다양한 극단주의자들이 충돌하며 대립하면 미국과 중국이 대리전을 획책할 위험성이 상존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