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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에 고통 받는 아프칸 여성들> <가파리,하미디,쿠피 아프칸 여성 3인은 누구?> <아프간 최연소 여성 시장> <여성 장관은 아프간 지켰다> <탈레반과 협상한 아프간 여성 쿠피>

by 찐럭키가이 2021.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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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에 고통 받는 아프칸 여성들> <가파리,하미디,쿠피 아프칸 여성 3인은 누구?> <아프간 최연소 여성 시장> <여성 장관은 아프간 지켰다> <탈레반과 협상한 아프간 여성 쿠피>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탈레반이 통치하던 기간,그들은 여성을 공공장소에서 배제했다.교육도 받지 못하게 했고, 일자리를 갖는 것도 막았다.탈레반은 자신들의 이슬람 율법을 강요했고, 돌팔매질이나 태형 같은 처벌을 행하기도 했다.이에 국제사회의 비난이 있었고 20년만에 다시돌아와서 아프칸 여성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탈레반의 횡포로 고통받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상황과 이들에 맞서는 3명의 여성을 소개한다.29세 아프간 최연소 여성 시장 "나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대통령은 돈 갖고 빛의 속도로 튈 때,여성 교육부 장관은 아프간 지켰다,탈레반과 협상한 아프간 여성 쿠피등을 포스팅 한다.

 

1.탈레반의 횡포로 고통 받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상황

구소련군의 철수와 1992년 최후의 친 소련정부의 붕괴이후 아프가니스탄 곳곳은 전쟁터로 변하였고 그 와중에 1994년 탈레반 운동이 시작되어 탈레반은 회교국가 설립을 목표로 하는 회교근본주의 학생들에 의해 창설된 조직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걸쳐 내전을 이끌었고 결국 1996927일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입성하였고 전 아프가니스탄의 3분의 2가 이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탈레반은 곧 이어 그들이 원하는 신의 국가설립을 위하여 여성에 관한 그 경악스러운 새 법을 공포하였고 그들의 법에 따르면 여성들은 어떠한 직업도 가질 수 없고 어떠한 교육도 받을 수 없으며 소녀들을 위한 모든 학교는 이미 폐교되었고 여성들은 집에만 있어야 하고 밖에 나갈 때에는 가족이나 친척 중 남성과 함께만이 나갈 수 있다.

 

여성들은 집밖에서는 ‘burqa’(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뒤덮히고 눈 부분만 창살모양으로 되어 있는 옷)라고 불리우는 옷을 입어야 하고 여성들이 사는 집의 창문들은 없애거나 유리창을 검게 칠해야 한다.

 

여성들은 소리가 나는 신발을 신어서도 안 되며 신체중 어떤 부분이라도 보이게 해서는 안 되고 burqa 밖으로 복숭아뼈가 보여서도 안 되며 여성이 (남성을 동반하고) 물건을 사야 한다면 그의 목소리는 낼 수 없으므로 물건 파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고 손이 보이니까 손가락으로 어떤 것을 가리킬 수도 없다.

 

여성은 낯선 남자와 이야기해서도 눈을 마주쳐서도 안 되며 남자들은 침대에서만, 장난감으로서만 여자를 원한다.

 

여성들은 카불시에 하나 있는 여성 전용병원에서만 치료 받을 수 있으나 그곳은 수술실 하나 없이 다만 45개의 침대만이 있을 뿐이다.

 

199612월 한 라디오 방송이 카불에서 탈레반의 복장법을 위반한 225명의 여성들이 잡혀 처벌되었다고 보도했는데 처벌이란 케이블이나 호스로 때리는 것을 뜻한다.

 

이랬던 탈레반이 미국의 침공으로 정권을 빼앗겼다가 미군철수로 권력을 되찿으면서 국제사회에 여성인권을 보장하겠다며 여성앵커와 인터뷰를 하면서 선전을 하고 있으나 과연 이행할지 미지수다.

 

그렇다면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은 저항하지 않을까?

 

2.29세 아프간 최연소 여성 시장 "나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한 날 아프간 여성 인권의 상징으로 불리는 최연소 여성 시장 자리파 가파리(29)가 이런 말을 남긴 채 연락이 끊겼다고 영국 일간 i뉴스가 현지 시각 15일 보도했다.

 

i뉴스 보도에 따르면 수도 카불에서 서쪽으로 약 46km 떨어진 마이단샤르시() 시장인 가파리는 탈레반이 카불에 진입한 날, i뉴스와 채팅 앱으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는 나는 그들(탈레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나 내 가족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그들은 나 같은 사람을 찾아서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 가족을 떠날 수 없다. 내가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고 이후 가파리 소식은 끊겼다.

 

그는 15일 소셜미디어에 남긴 마지막 게시물에 카불 시내를 내려다보는 사진과 함께 사랑하는 내 조국, 네가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안다내 꿈은 사랑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진보적인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썼다.

 

가파리는 지난 2001년 미군의 아프간 침공으로 탈레반이 퇴각한 뒤 교육 기회를 누린 젊은 아프간 여성 세대의 상징적 인물이다.

 

아프간 팍티아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도 펀자브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2014년 아프간 여성들을 위한 비영리 시민 단체(NGO)를 설립해 여성 인권 운동을 했다.

 

2018년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그를 인구 35000명의 마이단샤르 시장에 임명, 아프간 역사상 최연소 여성 시장이 됐다.

 

그는 국제사회에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 인사다.

 

2019년 영국 BBC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에 뽑혔고, 작년 미국 국무장관이 수여하는 세계 용기 있는 여성상을 받았다.

 

i뉴스는 가파리는 탈레반이 싫어하는 전형적 인물이라며 똑똑하고 거침없으며,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여성이라고 말했다.

 

가파리는 시장 취임 이후 여성을 멸시하는 아프간 문화에 맞서 싸웠다. 시장 취임 직후부터 사퇴를 요구하는 남성들의 괴롭힘에 시달렸고, 탈레반의 지속적 살해 위협을 받았다.

 

임기 첫날 성난 남성들이 돌과 장대를 들고 집무실로 몰려와 취임이 미뤄지기도 했으나 하지만 가파리는 물러서지 않았고 2019년 그는 안전 문제로 도시에 머무를 수 없게 되자,카불에서 통근하면서 시정을 돌봤다고 당시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가파리는 지난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군 완전 철수를 발표한 뒤, 아예 거처를 카불로 옮기고 국방부에서 테러와 전투로 부상한 군인과 민간인을 돕는 일을 했다.

 

탈레반이 빠른 속도로 아프간 주요 도시를 점령하는 와중에도 그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지난달 22i뉴스와 처음 한 인터뷰에서 아프간의 젊은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고, 소통할 수 있다나는 그들이 사회 진보와 우리의 권리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나는 우리의 미래가 거기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i뉴스 인터뷰 이후 연락이 닿지 않던 가파리는 17(현지 시각) 비공개 상태였던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다시 공개로 돌려놓았다.

3.대통령은 돈 갖고 빛의 속도로 튈 때,여성 교육부 장관은 아프간 지켰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접근하자 15일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부인과 참모진과 함께 차 4대 분량의 돈이 헬기에 모두 들어가지 못해 일부는 활주로에 남겨두고 항공편으로 빛의 속도로 급히 도피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 최초의 여성 교육부 장관인 랑기나 하미디(45)가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의 도피 소식을 전해듣고 충격적이고 믿을 수 없다.전적으로 신뢰했던 대통령이 도망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마음 한쪽엔 아직 그가 떠났다는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수치스러운 일이다고 밝혔다.

 

하미디 장관은 무장단체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함락한 15(현지시간) 자택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원격으로 영국 BBC방송과 실시간 인터뷰를 하면서 하미디 장관은 지금 나는 창문에서 최대한 떨어진 복도에서 인터뷰하고 있다내일 아침까지 우리가 살아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11살 딸이 있다아프가니스탄의 모든 어머니와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를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딸이 꿈꿔왔던 모든 미래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만약 살아남는다면 수백만 소녀들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미디 장관은 어린 시절 소련의 아프간 침공(1979)으로 파키스탄의 난민촌에서 생활하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2003년 귀국한 뒤 구호기관 문명사회를 위한 아프간인들을 만들어 국장을 맡았고 지난해 아프간 정부가 들어선 지 20년 만에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교육부 장관에 임명됐었다.

 

4.탈레반과 협상한 아프간 여성 쿠피

쿠피는 범 아프가니스탄 대표단 자격으로 탈레반과 여러 차례 협상을 벌인 몇 안 되는 여성 중 한 명이다

쿠피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직접 대화하는 것을 거부하며 그들은 "카불에 있는 꼭두각시 정부"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으나 미국과 러시아가 지속적으로 탈레반을 압박해 타협이 이루어졌고, 탈레반은 비공식 대표단과 대화를 하게 됐다.

 

쿠피는 세 차례에 걸쳐 아프가니스탄 대표단으로 나섰고 탈레반 대표들과는 모스크바에서 두 번, 도하에서 한 번 만났다.

 

탈레반이 삶을 바꿔놓은 한 사람으로서, 그는 여성의 권리를 놓고 탈레반과 맞섰다.

 

그는 평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여성을 더 많이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쪽에 여성 대표단이 있는 만큼, '당신들도 여성을 협상테이블에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들이 바로 웃음을 터뜨리더라고요."

 

하지만 탈레반은 여성 대표를 협상 테이블에 데려오지 않았고 평생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살아온 쿠피는 그런 처벌을 견뎌온 여성들의 삶을 알고 있었고 향후 정부가 그런 잔혹한 관행을 되풀이하지 못하게 막고 싶었다.

 

자신들의 발언 차례가 되자, 한 탈레반 협상가가 남녀평등을 요구한 쿠피의 발언에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여성은 총리는 될 수 있어도, 대통령은 될 수 없다고 말했어요. 여성은 재판관이 될 수도 없다고 말했죠."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재판관과 국가의 수반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남성뿐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쿠피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회담은 양방향의 토론이 허락되지 않았고 "저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논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달 후, 수하일 샤힌 탈레반 정치국 대변인은 BBC 파슈토어(아프가니스탄의 공식 언어) 기자 이냐툴하크 야스니에게 "우리는 이슬람이 주는 모든 권리를 여성에게 부여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슬람에 명시된 그들의 교육 받을 권리를 수용한다"고 말했다.

 

두 번의 국회의원 임기 중 첫 임기에서 그는 의회 부의장을 맡았고 국회의원으로서 20103,국제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낭가하르 주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호송차량을 향해 총알이 쏟아졌고 그를 살해하려는 탈레반의 공격에서 살아남았다.

 

미국과 탈레반이 평화 협상을 향해 가고 있자 파지아 쿠피는 "모두가 평화를 원한다""우리는 전쟁 속에서 태어나 전쟁 속에서 자랐기에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은 평화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쿠피는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우리가 어떻게 전쟁을 끝내느냐가 가장 큰 과제인데, 품위 있는 평화로 끝내느냐 아니면 또 다른 전쟁으로 끝내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평화는 존엄과 정의,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말했다.

 

쿠피는 "외국 군대의 주둔은 아프가니스탄 군인들에게 커다란 도덕적 지지가 되고 명확한 외교적 메시지를 전해준다""우리는 몇 년 더 외국 군대의 주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쿠피는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향후 정부를 구성할 때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민주주의의 존속과 여성의 권리를 강조했다.

 

"민주주의를 대체할 것은 없습니다. 오직 민주주의 안에서만 모두가 발언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쿠피는 "여성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는데 얼마나 더 잃을 수 있을까?"라며 "그들은 우리에게서 얼마나 더 가져가기를 원하는가?"라고 물었다.

 

"어떠한 권력도 나의 딸들과 그들의 또래 여성들을 집안에 가두어 둘 수 없습니다.

국가를 통치하려는 이들은 이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겁니다.“

 

오늘날에는 250만 명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해외 난민으로 등록되어 있고 국가 안에 격리되어 있는 이들도 200만 명에 달한다.남편을 잃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들도 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생각컨대,아프카니스탄 가니 정부가 탈레반에 함락되고 나서 탈레반은 국제사회에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며 여성권리를 보장 하겠다고 하나 국제사회는 반신반의 하는 추세이므로 여성인권을 존중하며 정상국가로서 돌아오길 바란다.

 

또한,국가란 무엇인가?민심을 얻어야 다시 권력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므로 20162017년의 소득 조사에서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빈곤선 이하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므로 빈곤극복이 최우선이고 현대사회에서 여성 인력 활용은 필수적인 것이며 따라서 교육은 그 전제조건이고 사회는 회교 율법의 도그마로부터 벗어나 개방적으로 변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공산주의도 경험해 보았고 소련의 침공도 받아 보았으니 체제 경쟁에서 공산주의 국가가 이미 자본주의에 패배 하였으므로 경제체제도 자본주의로 가야 하며 미국의 철수로 러시아와 중국이 회토류등 자원을 노리며 접근 하고 있기에 국부를 지키는 일에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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